2009.12.31 22:49

등불선교편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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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선교편지 (5)

 ( 편지 원본 : 등불선교편지05.pdf  )

 

많은 분들이 저희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역에 관한 내용보다는 이곳에서 9개월 정도 살면서 경험한 내용을 중심으로 일반적인 생활에 관해 정리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이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실 때나 혹은 추후에 이곳에 들르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이 편지는 실제적인 정보가 될 것입니다.

 

1. 기후

북반구에 위치한 한국과 반대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남반구이기 때문에 기후가 서로 정반대입니다. 즉, 한국이 더울 때(6-8월) 이곳은 춥고, 한국이 추울 때(12-2월) 이곳은 덥습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추위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곳의 추위는 낮에는 따가운 햇볕이 쪼이다가도 밤에는 기온이 영하권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일교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몸으로 느끼는 추위는 제법 상당합니다. 사막기후의 특징이 낮과 밤의 일교차가 매우 심한 것인데 밤과 새벽에는 제법 살을 깎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온돌문화가 발달한 한국과 달리 이곳의 집들은 난방장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춥게 느껴집니다. 집안에서도 늘 두꺼운 오리털 파카옷을 입었고, 잘 때에는 전기장판을 항상 틀고 잤을 정도입니다. 반면 이곳의 11-1월은 한국과 정반대로 아주 무더운 여름입니다. 그러나 밖에 나가면 절로 땀이 나지만 건조한 사막기후이기 때문에 집 안에만 있으면 시원합니다. 이 나라에서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9-10월로서 곳곳에 예쁜 꽃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그냥 시외로 드라이브만 나가도 아프리카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나라의 면적은 한반도의 10배나 달하기 때문에 기후도 매우 다양합니다. 케이프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이어서 겨울에도 비가 자주 내립니다. 그러나 해변에서 조금만 내륙으로 가도 기후는 금새 사막기후로 바뀌어서 건조하고 덥습니다. 내륙지방에서는 여름에 비가 내리긴 하지만 한국처럼 장마가 아니라 오후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쏟아집니다. 그리곤 언제 비가 내렸는지 아침에는 맑은 하늘을 보게 됩니다. 이 나라의 기후는 한 마디로 말하면 세계 모든 나라의 기후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함이 특징입니다. 개인적으로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광활한 대지에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다양한 구름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2. 음식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한국처럼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사막기후에다가 원래부터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의 가정에는 나름대로 전통 음식이란게(‘보보티’ 혹은 ‘브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흑인들에게는 팝(PAP)이란 음식을 주로 먹는 것 외에는 달리 특별한 음식문화가 없습니다. 저희들이 이곳에서 살면서 하루에 한 두 번은 빵을 먹고 또 밥과 김치를 먹기도 합니다. 쌀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태국이나 호주에서 수입한 쌀을 사다 먹고, 김치는 포르투갈인이 운영하는 야채가게에서 무와 배추를 사서 해먹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고추는 매우 맵습니다. 안매운 고추를 구하기란 하늘에서 별따기입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에게 특별히 어렵게 구해먹기도 합니다. ‘브라이(braai)’는 이 나라의 보편적인 음식문화입니다. 손님이 찾아오면 그냥 숯불을 피워서 고기를 구워서 먹는 것뿐인데 한국보다는 고깃값이 저렴한 편입니다. 저희 가족 모두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한국보다는 자주 먹게 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먹었던 한우나 숯불갈비, 불고기 혹은 쌈밥 같은 것은 결코 맛볼 수 없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최고로 여기는 고기는 양고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막에서 키운 양고기를 최고의 고기로 쳐줍니다. 푸른 초장을 먹고 자란 양고기는 냄새가 나지만 사막에서 키운 양고기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먹던 채소와 다양한 나물이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님들은 한국에서 씨앗을 구해와서 마당에서 키우기도 합니다.

 

3. 언어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마다 여러 부족이 함께 살기 때문에 여러 언어군이 상존합니다. 이곳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닌데 정부에서 인정한 공식언어만도 11개나 됩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언어는 영어, 아프리칸스, 줄루어, 수투어, 쯔와네, 코사어 등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마다 대표적인 언어군이 있습니다. 저희가 이사를 하게 된 포체스트롬의 경우 영어보다는 아프리칸스어가 상대적으로 강한 곳입니다. 아프리칸스를 사용하는 아프리카너들은 수 백 년 전에 네델란드에서 건너와 이곳에 정착한 화란계 백인들로서 매우 보수적인 사람들이어서 흑인보다 더 사귀기가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저는 흑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지만 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아프리칸스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아프리칸스를 조금씩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학교이지만 꼭 배워야 합니다. 프레토리아에 있을 때에는 저와 아내가 영어 외에 줄루어를 배웠는데, 포체스트롬에서는 줄루어가 거의 무용지물이기에 새롭게 아프리칸스와 수투어를 배워야 합니다. 이곳에서 태어난 흑인의 경우 영어 이외에도 4-5 개의 언어를 구사하거나 알아듣는 것은 보편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과 대화할 때마다 “당신네들은 정말 천재들이다.”라고 칭찬해줍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말과 다른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인을 만나기란 어렵지만 이곳에서는 4-5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현지인을 만나기란 쉽습니다. 물론 영어만 써도 어디를 가나 의사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어(이곳에서는 mother's language라고 부름)를 할 줄 아는 것은 현지인들의 마음을 얻고 친밀한 관계를 갖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님은 “현지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곧 선교사역”이라고 주장합니다. 사실 이곳에 살다보니 평생 언어를 배우다가 세월을 다 보낼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굉장히 보수적인 백인들의 마음 문을 열기 위해서 어려운 아프리칸스를 배워야 하고, 흑인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그들 종족을 알아서 그들의 말을 배워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현지어로 인사말과 간단한 회화정도만 구사할 줄 알아도 굉장히 유익합니다. 이렇게 언어군이 다양하기 때문에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지만,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같이 영어를 정확하게 구사하지 못하고 대충 대충 말해도 아무도 저더러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산다면 다르겠지만 이 나라는 워낙 언어군이 다양하니까 대충 단어만 나열해도 의사소통에 아무 지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할 때는 틀리는 것에 대해 부담이 아주 컸지만 이곳에서는 문법적으로 틀려도 아무런 부담이 없습니다. 이것이 자신감으로 연결되어 영어나 다른 언어를 배우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나라의 가장 큰 장점이 다양성입니다. 다양한 인종과 언어와 문화를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도 다양성을 좋아하셨는지 느낄 정도입니다. 참고로 이곳에서의 영어도 매우 다양한데 아프리칸스 억양이 강한 영어, 흑인 부족어 억양이 강한 영어 등이 있습니다. 해변가 도시(케이프, 포트엘리자베스, 더반 등)인 경우 영국민들이 지배했던 곳이기 때문에 정통 영국식 영어를 접할 수 있지만 제가 사는 내륙에 올라오면(해변가 지역외에 대부분 내륙지방이 해발 1500이 넘는 고원지대로 건조한 사막기후임) 아프리칸스 억양이 강한 영어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4. 자동차

이곳에서는 여러 가지 모델의 자동차를 도로에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이 나라는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음에도 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 나라의 모든 자동차들은 수입차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척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새 차 값이 이곳에서는 중고차 값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눈이 내리는 등 기후변화가 심하고 짧은 도로가 많은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의 자동차들은 중고차라도 수명이 제법 긴 편입니다. 제가 몰고 다니는 차 역시 35만 킬로를 주행한 10년된 차입니다. 한국에서는 신차를 사서 3-5년마다 바꾸지만 이곳에서는 결코 그런 법이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오랫동안 타면서 잘 관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70년산 비틀스차량을 이곳에서 제법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이곳에 와서 처음 신기했던 것은 도로에서 자동차 종류가 이렇게도 많은지 놀랐던 것이고, 또 한국에서 많이 보았던 한국차들이 이곳에서는 희귀하기 때문에 도로에서 한국차들을 보게 될 때 너무너무 반가웠던 것입니다. 최근에는 한국차들도 조금씩 많이 눈에 띈다는 것을 보게 될 때에 한국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 팔리는 한국차들은 액센트나 아반떼와 같은 소형차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의 중대형차들이 잘 팔리지 않는 이유는 경쟁력 때문일 겁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부분의 차들은 일본차 아니면 독일차입니다. 일단 차들이 많고, 많기 때문에 정비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곳 현지인들에게는 미국차들은 튼튼하지만 연비가 나쁘며, 일본차와 독일차는 내구성이 튼튼하고 연비도 좋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애국심을 가지고 국산차를 구입하고 싶어도 이곳에서 한국차들은 부품 구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와 같은 말 그대로 ‘외제차’입니다. 많이 굴러다니는 차들은 부품을 구하기가 쉽고 그래서 중고차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차의 경우는 부품 구하기가 어렵고 그리고 부품을 구할 수 있어도 많이 비싸며 중고시장에서 사람들이 찾지 않기 때문에 중고차값이 많이 떨어집니다. 한국차는 이곳에서 효율이 떨어지는 ‘외체차’일 뿐입니다. 이곳에서 국산 신차를 살 수 있지만 한국보다 훨씬 비싸고 아직 내구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정비소도 많지 않기 때문에 다들 망설입니다. 그러나 최근 SUV 중에서 내구성이 좋은 한국차들이 많이 들어오고 품질에 대한 평판도 좋아지는 추세에 있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차는 신차값은 비싸지만 중고차값은 제대로 받기 힘든 실정입니다. 자동차 없이 사역할 수 없는 나라이고 또 사역현장에 자주 왕래해야 하는데 한번 고장 나면 큰 일이고, 고장 났을 때 어렵게 정비소에 맡기더라도 부품구하기가 어렵기에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이곳의 선교사님들은 대개 사역을 위해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해야 하기 때문에 내구성이 좋은 차를 선호합니다. 저 역시 최근 3-4개월 동안 2만 키로를 넘게 주행했습니다.

 

5. 교통문화

한국에서 오시려고 하는 분들은 이곳에 도착해서 이곳저곳 여행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발달된 한국과 달리 이 나라에서 여행하려면 자동차 없이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여행하는 것은 거의 어렵고 누군가 운전해주지 않으면 이 나라에서 어디를 다니는 것은 거의 어렵다고 보아야 합니다. 자동차를 렌트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려운데 왜냐면 이 나라의 자동차 구조가 한국과 정반대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영국과 일본식), 그렇기 때문에 교통문화가 한국과 너무 상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오토차량이 많지만 이곳은 오토차량이 신차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무튼 제일 먼저 당황하는 것은 도로상황입니다. 저 역시 이 나라에서 6개월 정도 지내다 보니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여행도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 나라의 대중교통은 있다고 하지만 가난한 흑인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밤에도 돌아다닐 수 있고 택시를 타도 비교적 안전한 한국과 달리 이곳에서 밤에 돌아다니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는 강도들의 소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곳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강도를 만나볼 생각이 아니라면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흑인들조차 밤에 운전하는 것을 싫어할 정도입니다. 밤에는 흑인들의 얼굴은 눈동자 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갑자가 다가와서 자동차 유리창을 깨고 강도짓을 하는 흑인들을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심지어 낮에 운전할 때에도 핸드백과 손지갑 같은 것을 조수석에 올려놓는 것은 피해야 할 행동입니다. 그러나 오른쪽 운전석과 좌측 통행에 익숙해지면서 의외로 편리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는 없는 ‘비보호우회전’이라든가, ‘라운드어바웃(round-about)’ 등 영국에서 전수된 진보된 교통문화가 상당히 합리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는 신호등이 있는 사거리(이곳에서는 Robot이라고 부름)가 많지 않지만 가끔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이럴 때는 대혼잡이 일어나겠지만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절대 막히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씩 순서를 지키며 빠져나가기 때문에 조급한 마음도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교통문화는 한국에서 수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경우는 먼저 온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이 있지만 이 나라에는 보이지 않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 순서를 깜빡하게 되면 이 나라에서는 큰 사고가 납니다. 제가 배운 것은 질서는 곧 순서를 지키는 것입니다. 교통문화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에도 하나님이 정하신 순서가 있는데 그 순서를 잘 지키는 것이 좋은 가정 좋은 교회 좋은 나라의 특징입니다. 아무튼 이 나라의 교통문화는 한국보다 더 좋아 보입니다. 저의 경우 아직도 적응이 덜 되어서인지 운전석에 앉을 때 차의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데 한국에서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종종 왼쪽으로 가서 문을 열려고 하다 멋쩍게 웃는 때가 있습니다.

 

6. 치안

이 나라에서 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한국이 참으로 살기 좋은 나라라는 사실입니다. 한국은 해가 지고 나서도 돌아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자동차가 없어도 어디든 갈 수 있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해가 지면 집안에 있어야 합니다. 밤은 어둠의 세력이 활개를 치는 때입니다. 물론 대낮에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시내에서는 자동차 유리창을 깨고 훔쳐가는 강도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나라의 최대 문제는 치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프레토리아나 요하네스버그와 같은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 경우는 더더욱 치안이 불안합니다. 왜냐면 빈부격차가 심한 도시에 돈이 많이 몰리기 때문입니다. 프레토리아의 경우도 같이 사역하는 선교사님들 중에 두 번 이상 권총강도를 당한 가정이 둘이나 있습니다. 작은 도시의 경우 좀도둑이 많지만 큰 도시의 경우 좀도둑만 아니라 대부분 4-5명으로 이루어진 권총강도가 많습니다. 요즘은 지방에 있는 작은 도시로 원정(?)을 간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게다가 대다수 흑인들은 매우 순박하고 착하지만 어떤 흑인들은 인권에 대한 어떤 성경적인 존중심이 거의 없기에 무자비합니다. 특히 인종차별정책과 물질주의를 경험한 남아공 흑인들은 다른 아프리카 나라의 흑인들보다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요하네스버그는 강도의 소굴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프레토리아 인근의 마멜로디란 흑인밀집지역으로 가서 신학강의사역을 6개월 했을 때에도 주변에서는 한 길로만 다니지 말고 여러 길로 운전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케이프타운 같은 도시의 경우 세계적인 관광도시이기 때문에 정부차원에서 곳곳에 경찰을 많이 배치해서 안전한 편이라는 말을 듣습니다만 그래도 이 나라는 어디를 가나 안전문제로 신경이 꽤 쓰입니다. 프레토리아에 살던 집은 쇠창살이 이중 삼중으로 쳐있어서 처음 이사 들어갈 때에는 마치 감옥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살면서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밖으로 출입할 때에는 따라오는 흑인이 없는지 늘 조심합니다. 반면 포체스트롬과 같이 인구 10만 미만의 작은 도시의 경우 상대적으로 치안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새로 이사한 집의 경우 펜스가 1m 정도밖에 안 되고, 주변에는 담장이 아예 없는 집들도 꽤 보입니다. 그러나 집집마다 도베르만이나 불독같은 맹견을 1-2마리씩 키우고 있는데 저희도 이사 후에 한 마리 키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마다 도난을 위한 보험을 다들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보험제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보상을 잘 해주는 편입니다.

 

7. 환율과 은행

이 나라의 환율정책은 자율정책입니다. 그래서 환율 등락폭이 제법 큰 편에 속합니다. 정부에서는 랜드(RAND) 강세를 선호하는 듯합니다. 최근 국제적인 달러화 약세 때문인지 월드컵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랜드가 더욱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만원권이 대표적인 화폐라고 한다면 이곳에서는 100란드 화폐가 그렇습니다. 100란드를 한화로 바꾸면 16000원 정도 합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은 100란드 화폐를 한국돈 1만원 권과 비슷한 가치로 사용되는 것을 느낍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 나라의 화폐가 이상하게 강세를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짐바브웨처럼 통화가치가 갑자기 떨어지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곳 선교사님들은 한화 강세-달러 약세-랜드화 약세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곳 교민들과 선교사님들은 물가상승과 고환율(랜드강세)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한편 현지 은행의 경우 한국과 달리 수수료를 많이 뗍니다. 자기 계좌에 돈을 입금해도 떼고, 자기 계좌에서 출금해도 뗍니다. 수수료는 적게는 5천원에서 많게는 2만원까지도 떼갑니다. 그러나 이자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원화에서 달러로 달러에서 랜드화로 송금받는 경우 한 달에 십 수 만원이 수수료로 떼입니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한국과 달리 인터넷 뱅킹은 수수료가 거의 없고 한국처럼 암호카드 등이 필요 없어서 현지에서 주로 현금거래할 경우는 주로 인터넷을 사용합니다.

 

8. 물가

이 나라에서 내년 월드컵이 치러진다는 것을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그렇고 현지인들도 그렇지만 들뜬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곳 현지인들(이 나라의 인구는 4500만으로 남한 인구와 비슷하나 국토면적은 한반도 면적의 10배가 넘음)의 10%를 차지하는 백인들은 이 나라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데 백인들은 럭비와 크리켓을 열광적으로 좋아합니다. 축구는 흑인들이 좋아하는데 가난한 흑인들에게는 월드컵이 남의 일처럼 보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경기장 티켓은 이곳 흑인들에게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어쨌든 정권이 움베키에서 주마로 넘어가고, 월드컵도 앞두고 해서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몇 달 전에는 전기료와 상수도만 40%가 올랐습니다. 이곳에 사는 어떤 선교사님의 경우 절약하며 사시는데도 월 3-40만원을 전기료로 냅니다. 한국에서 살 때에는 재래시장이 있어서 조금씩 사다먹기도 하고, 또 채소를 실은 트럭이 동네를 돌 때 사기도 하고, 가끔은 이마트에 들러서 사기도 했는데 이곳에서는 재래시장을 보기가 어렵고, 백인들이 세운 대형마트만을 이용해야 합니다. 밀가루값은 내려가는데 빵값은 계속 오르는 기현상이 가난한 서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살다보니 한국에서 느꼈던 체감물가보다 훨씬 비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햄버거 1세트가 4000원이라면 이곳에서는 5-6000천원 합니다. 그 외에 컴퓨터나 가구 등은 한국에 비해 평균 2-30% 비쌉니다. 이 나라에서 많은 물자들이 아프리카 전역으로 수출되고 있지만 대부분 제조업이 약하고 기본 원자재를 중국 등에서 수입하고, 경제권을 가진 백인들이 독과점하기에 정부차원에서 물가상승을 현실적으로 막기에는 역부족인듯 합니다. 이 나라에 살면서 한국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됩니다. 특히 한국이 살기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의료보험제도입니다. 한국은 참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저희 다섯 가족이 기본적인 의료보험을 드는데도 한국보다 5배나 더 비쌉니다.

 

9. 학교

수학을 잘 하는 것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갈수록 응용위주의 난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만만하게 볼 수 없습니다.오랫동안 백인들(화란계와 영국계)이 나라의 근간을 세웠는데 그 중에 교육제도는 아주 훌륭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매우 엄격하면서도 학생들의 개성에 맞게 배려하면서 교육하는 인상을 받습니다. 인근 나라의 경우 국제학교 아니면 현지인 학교로 구분하여 선교사들의 경우 선택의 여지가 없이 국제학교로 자녀를 보내야 하지만 이 나라의 경우는 국제학교는 찾아볼 수 없고 사립 아니면 공립이라는 현지인 학교제도가 잘 되어 있습니다. 사립의 경우 월 30에서 100만원까지 학비가 들고, 공립의 경우 10에서 20만원 정도의 학비가 듭니다. 물론 저렴한 공립의 경우 가난한 흑인 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점차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추세에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이나 프레토리아 그리고 요하네스버그처럼 큰 도시의 경우 한국에서 큰 비용을 들어서까지 자녀를 유학 보내는 가정이 늘고 있고, 의외로 기러기 엄마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집 주은이의 경우 거의 일 년 동안 학교를 가지 못했지만 다행히 주의 은혜로 내년 하이스쿨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신입생들이 100여명 되는데 백인 학생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백인 교사들이 있기에 아직까지는 교육의 수준이 유지되는 것 같습니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큰 도시일수록 교육의 기회와 정도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한국과 비교해보았을 때 한국보다 좋은 점은 사교육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수영이나 2개 정도의 악기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한국분은 이곳에서도 따로 과외를 하기도 합니다. 자녀 교육에 관심이 있는 현지인들도 과외를 하는데, 한국과 비교했을 때 과외비는 매우 저렴합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악기레슨이나 영어회화 교육을 과외로 받을 경우에 한 시간에 5-7천원 정도이니 한국과 비교했을 때 훨씬 저렴한 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과외를 맡아서 가르치는 사람도 현지 학교 교사이거나 대학교 교수들입니다. 큰 도시의 경우 영어전문학원이 발달되어 있는데 하루에 4-5시간씩 1달 학비가 30만원 정도입니다. 케이프타운의 경우 이보다 훨씬 비싼 편입니다. 그래서 단기간에 영어를 배우려는 대학생들이 언어연수로 이 나라에 많이 들어오는 추세에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도시로 갈수록 흑인들이 많거나 아프리칸스를 사용하는 보수적인 학교들이 많은 편입니다. 최근 한국 학생들이 많이 유학을 오는 추세에 있지만 예전에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유학하러 온 목사님들의 자녀들만 있었을 때와 달리 최근에는 한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오는 부적응 학생들이 늘고 있어 한국 유학생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현지인 학교 관계자들 사이에 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현지인 학교에서 공부를 성실히 잘 해야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부모와 같이 와서 공부하는 학생의 경우 좋은 성적을 내지만 부모는 한국에 있고 자녀를 이곳 선교사나 교민에게 맡겨서 공부를 하는 학생의 경우 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과 현지인 학교와 비교해볼 때 특이한 것은 이곳에서는 교과서를 개인에게 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만 잠시 내어주었다가 다시 거두어들입니다. 그리고 참고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받아 적은 노트가 곧 교과서가 됩니다. 현지인들에게 한국에서는 교과서를 개인마다 내어주고 또 참고서도 많이 구할 수 있다고 했더니 현지인들이 한국을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대학입시가 있지만 한국처럼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체육과 예능이나 특기 교육을 상대적으로 많이 강조하는 것이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는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점수와 등수를 공개하고, 성적표를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한국은 전산으로 학생 자료가 입력되는데 이곳에서는 나누어준 성적표가 전부이므로 잃어버리면 그 학생의 성적에 대해 알 길이 없습니다. 서로 장단점이 있겠지만 일단 이곳에서의 교육이 대학입시위주가 아닌 점이 좋아보입니다. 이곳에 유학하는 한국학생들을 보면 특히 수학을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지인 교사들은 한국인들이 특별히 수학을 잘 하는 것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갈수록 응용위주의 난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만만하게 볼 수 없습니다.

 

10. 인터넷

한국의 인터넷 수준은 세계일류입니다. 한국의 인터넷이 초당 50 메가의 속도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정부에서 이 속도를 10배로 높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의 인터넷 속도는 초당 400 키로도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지만 이 나라에서는 하루 종일 걸립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인터넷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은 정액제로서 기본 요금만 내면 무한정 사용할 수 있지만 이 나라는 종량제로서 쓰는 만큼 요금을 부과합니다. 저는 한 달에 3기가를 신청해서 사용하는데 한 달 요금이 5만원이 됩니다. 그리고 메일을 검색하고 인터넷폰으로 전화를 하는데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이곳에서 살면서 한국은 정말 살기좋은 나라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로 답답한 면이 감사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대로 인터넷을 할 수 없고, 저녁에 밖에 함부로 외출할 수 없고, 한국처럼 밤문화나 거리문화가 없고,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놀이시설도 없는 이 나라의 실정이 답답한 면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가족이 모여서 기도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감사의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아이들이 친구와 같이 놀러갈 시간과 장소가 많지만 이곳은 도저히 가출할 수 없기 때문에(?) 가족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11. 주일예배

어느 도시를 가나 한인교회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님들이 그렇고 저희 역시 한인교회보다는 영어로 예배드리고 설교하는 현지인 교회를 다닙니다. 현지인들과 사귀면서 이 나라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 아이는 한인교회에 보냅니다. 아직 영어예배를 힘들어하고, 특히 한국말을 더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크면 모두 현지인 교회를 다니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지인 교회를 다니지만 흑인 교회에서 주일설교를 요청해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일단 응합니다. 백인이 목회하는 교회는 1-1시간 30분 정도, 흑인이 목회하는 교회는 3시간 정도 예배를 드립니다. 백인이 목회하는 교회의 예배는 전통적인 장로교 예배와 분위기가 비슷하고, 흑인이 목회하는 교회의 경우 춤과 음악이 많은 편입니다. 선교사가 현지인 교회를 목회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저는 일단 현지인 교회는 현지인이 목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교사의 주 임무는 현지인 교회를 목회할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한 교회에 꾸준히 다니면서 주일학교를 경험하면서 자라야 하는데 교회를 자주 옮겨 다니는 것에 대해 제 아이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지인 교회 역시 주일학교를 제대로 운영하는 교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실정도 있습니다. 주일학교가 미국침례교회에서 처음 시작했는데 이곳 현지인 침례교회조차 주일학교를 운영한다고 해도 그것은 부모들이 예배드릴 동안 잠시 아이들을 맡아서 관리하는 수준입니다. (흑인교회에서 주일학교를 운영하는 교회를 찾아보기란 거의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아이들에 대한 양육과 신앙훈련은 부모로서 더 큰 책임과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 아이들이 이 나라에 잘 적응하고 신앙 안에서 잘 훈련받아서 부모의 대를 이어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12. 교회상황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복음화율이 60%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나라에서 살다보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반 이상은 이단(ZCC라는 이단은 이 나라에서 제일 큰 이단인데 실제로 기독교로 포함됩니다.)이고, 그 외에 대부분은 명목상 신자들입니다. 실제로 주일마다 교회 출석하는 현지인들은 그중에 10분의 1도 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5-6%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구 100만이 넘는 케이프의 칼리처를 가가호호 방문하며 조사한 어느 선교사님도 비슷한 통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이 나라의 기독교 교파가 수만 개가 넘는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는 총회장이 몇 안 되지만 이곳에서는 몇 개의 교회만 거느려도 자칭 총회장이 됩니다. 흑인 목회자들 역시 교파난립과 분열을 제일 큰 문제 중에 하나로 꼽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흑인 목회자들이라고 하는 분들 중에서 정규신학을 거친 분들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공포하면 다들 목사가 되는 나라입니다. 흑인목회자들이 시무하는 교회를 가보면 성경을 읽지도 연구하지 않고 했던 설교를 계속 되풀이하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부름받은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이 그 정도이니 교회가 세상에 주는 영향력은 거의 미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재 이 나라는 아프리카 나라들 중에서 에이즈감염1위, 치안불안1위, 물가상승1위, 등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들이 현지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데 근본적인 원인으로 영적 지도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볼 때 흑인들의 독특한 세계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랫동안 시행되어진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흑인들이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흑인지도자들이 양성될 기회가 없었고, 청년들은 정신적 도덕적 공황을 경험하면서 자랐기에 이 나라의 치안문제까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자칭 목회자라고 하는 흑인 지도자들을 불러모아서 성경과 균형 잡힌 신학을 가르치는 일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향후 10-20년 후 이 나라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을 불러보아서 성경을 가르치면서 제자훈련을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주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

 

13. 사역계획

끝으로 앞으로의 사역계획을 잠시 말씀드린다면 새로 이사한 집을 선교센타로 삼고 인근지역부터 신학교 사역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멀리는 400킬로 떨어진 레소토까지 사역의 범위 안에 놓고 있습니다. 케이프타운에 본부로 있는 [아프리칸 리더십]이란 단체에서 사역을 위한 신학교재를 무상으로 계속 받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아프리카 전역에 영적 지도자들을 세우고 훈련시키는 것을 비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는 아프리카에서 남아공이 영적지도자훈련이 제일 취약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단체의 대표로 계시는 엄영흠 선교사님과 몇 번 만나고 교제도 나누었는데 비전과 열정에 있어서 제가 많이 배워할 멘토와 같은 분이십니다. 프레토리아에서 이미 하고 있는 [아바-ABBA]사역 역시 내용은 아프리칸 리더십 교재로 신학사역을 하고 있는데 프레토리아에 계신 선교사님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향후 컨퍼런스나 세미나에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돕기로 했습니다. 제가 프레토리아를 떠나 180킬로 떨어진 곳에 이사해서 그곳에서 개척사역을 한다고 해서 처음에는 많이들 아쉬워하셨지만 다들 제 진심을 이해해주시고 기꺼이 축복해주셨고 같은 [아프리칸 리더십] 사역을 하기에 앞으로 좋은 동역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역의 노하우를 서로 공유하는 동반자로 계속 교제를 나누게 될 것입니다. 또한 더욱 기쁜 것은 한국에서 잠시 교제를 나누었던 임성현 목사님께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12월 22일 이 나라에 들어오시게 되셨는데 역시 함께 [아프리칸 리더십] 사역(아프리카의 영적 지도자를 키우고 세우는 사역)을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볼 때 아프리칸 리더십은 임목사님의 은사와 성품에 꼭 맞는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12월에는 이사를 하고 채 정리도 못한 채 러스텐버그에서 중남부 아프리카 한인 선교사대회를 참석하고 마치자마다 케이프타운 공항으로 달려가서 임성현 목사님 가정을 맞이하고 이스트런던에 무사히 정착하는 과정에 동행하느라 새로 이사한 집에는 며칠 있지도 못했습니다. 30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 저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임목사님 가정은 현지기후와 건강의 문제와 선교 전략적 지역안배의 이유로 이스턴 케이프에 있는 이스트 런던에서 사역을 하시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만 우선 처음에 정착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정착을 잘 하실 수 있도록 엄선교사님과 제가 힘껏 도울 생각입니다. 최근 들어 주님께서 좋은 사역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도록 귀한 선교사님들을 많이 만나도록 역사하여주시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가 주님의 나라가 되는 날이 머지않을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같은 마음으로 지속적인 중보기도의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이곳에 살다보니 중보기도의 위력을 새삼 느낍니다. 많이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2009년 12월 31일

                                                   노스 웨스트 포체스트롬에서

                                                   김광락, 조성라, 주은,시은,고은 올림

 

※기도제목

1. 은혜가운데 모든 비자문제와 학교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사역의 지경을 더욱 넓혀주신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아울러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 무사히 이사를 잘 하였는데 앞으로 영성 관리를 잘 하게 하시고 새로 이사한 곳에서 잘 정착하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가운데 이 나라의 미래를 바꿀 영적 지도자를 세우는 새로운 사역에 기름부으심이 있도록

3. 건조하고 불안한 치안 가운데서 몸과 마음과 집을 지켜주시고 늘 건강하여 주님과 교회를 잘 섬길 수 있도록

4. 일 년을 쉬었다가 현지인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하게 될 세 아이들에게 지혜와 총명 주셔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을 수 있도록

5. 같이 동역하게 된 임성현 목사님 가정이 이스트런던에 정착하게 되었는데 좋은 집과 자동차를 주시고 많은 후원자들을 일으켜주시도록

6. 아프리칸 리더십 사역에 함께 하는 모든 동역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남아공 전역에 영적 지도자들을 훈련하고 세우는 일에 가시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현지연락처

1. 집주소   

   146 O.R.Tambo St. Potchefstroom, RSA

2. 연락처

   집전화 018-293-2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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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쎌폰 079-018-7009 (김광락) 079-018-7007(조성라) /*국가번호: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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