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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1 (마6:9-13)

 

기독교인은 무엇을 믿으며, 어떤 행동을 해야 하며,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세가지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지름길이 바로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을 배우고 가르치면 된다.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고, 십계명은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며, 주기도문은 기독교 비전의 핵심이다. 그래서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은 기독교인의 3대 보물이라 한다. 오늘부터 몇 주 동안 주기도문을 같이 배우도록 한다.

 

주기도문은 기도 중의 기도로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바른 기도의 모델을 배울 수 있다.

 

주기도문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나왔다. 마태복음에 나온 주기도문의 배경은 예수님이 외시적인 기도와 이방인적인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을 가르치며 바른 기도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외시적인 기도는 다른 사람 앞에서 남에게 보여주는 기도. 이방인의 기도는 신을 향해 자기가 원하는 것만 구하는 기도라고 한다. 그러나 바른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라 부르기도 한다. 기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 가는 대화의 과정이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을 배우는 과정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는 나의 기도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주기도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9,10절은 전반부, 11,12,13절은 후반부다. 전반부 세가지 기도는 모두 2인칭으로 되어 있다. 즉 하나님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기도. 후반부 세 가지 기도는 모두 1인칭오로 되어 있다. 우리의 양식, 우리의 죄 용서, 우리의 시험 받지 않음을 구하는 기도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목적과 뜻과 계획 등을 위한 기도가 전반부의 내용에 담겨 있고 후반부는 우리의 필요에 대한 기도다. 따라서 전반부는 하나님을 위한 기도고 후반부는 이간을 위한 기도다.

 

먼저 9절부터 보도록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호칭은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여 준다. 다른 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은 내가 누구이며, 상대방이 누구인지, 서로 어떤 관계인지를 나타낸다. 아기가 엄마한테 부를 때, 남편은 아내한테 부를 때, 학생은 선생님한테 부를 때 다 마창가지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하나님을 부름으로써 시작된다.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는지 보면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통성 기도해야 하는가? 아니면 침묵기도해야하는가? 이것은 이차적 문제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삶을 위해서 기도하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필요를 구하는가? 이것도 이차적인 문제 다. 기도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인식이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과 관계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이 있다. “하늘에 계신” 무한하고 크신 하나님, 하나님의 초월성을 보여 주신다. “아버지여”우리와 가깝고 친밀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곧 하나님과 우리의 가까움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 인간과 무한히 다른 점과 같은 점을 모두 함께 인식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세 가지 관계망 속에 들어간다. 인간관계, 자연 만물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다. 세가지 관계 가운데 인간 관계와 자연관계가 다 좋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실패자가 된다. 전 두 가지의 관계는 다 일시적인 관계지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영원한 관계이다. 하나님과 영원히 좋은 관계를 잘 맺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호칭이 바뀐다는 것은 관계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결혼 전과 결혼 후의 호칭이 다르다. 전에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인식을 못한다면 이제부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과 부자의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