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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 무엇이 문제인가?

서민호 (한국창조과학회 이사, 계명대학교 교수, wonderfuldesign.com)

 

1. ‘다빈치 코드 (댄 브라운  지음)’의 줄거리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사라’라는 딸을 낳았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의 딸 사라는 프랑스 남부지방으로 옮겨가 살았다.

예수의 후손은 프랑스 메로빙 왕조를 이루었다.

이 모든 사실은 중세 때 탬플 기사단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비밀문서로 발견했다.

탬플 기사단은 비밀문서를 이용하여 교황청을 협박하여 엄청난 돈을 받아냈다.

 

교황은 프랑스 왕에게 명하여 탬플 기사단을 거의 다 암살했으나 비밀문서는 못 찾았다.

일부 살아남은 탬플 기사단의 후예가 ‘시온 수도회’를 조직했고 현재까지 존재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뉴턴, 빅토르 위고 등은 모두 예수의 후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든 비밀을 그의 그림과 작품 속에 암호(code)로서 감추어 두었다.

‘오푸스 데이’라는 가톨릭 단체가 이러한 증거들을 없애고 예수의 후손을 죽이고 있다.

이 모든 내용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사실이다.

 

예수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니케아 종교회의를 열어 예수를 신격화 시켰다.

복음서는 80개나 있었는데 콘스탄티누스가 4복음서만 선택하고 나머지는 금지했다.

예수는 자신의 후계자로 막달라 마리아를 세웠는데 남자들이 권력을 쥐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구원을 받는 길은 예수를 믿는 것만이 아니고 각자에게 맞는 다양한 많은 구원의 길이 있다.

 

2. ‘다빈치 코드’의 허구성과 상업성

 

역사적 사실이 전혀 아니며, 완전히 날조된 역사 왜곡이다.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적 이단 종교 사상이다.

종교 다원주의-여권운동-성해방 시류를 이용하였으며, 사람들의 호기심(궁금증과 재미)을 이용한 공상소설로서 5,000만부나 판매된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이며 영화화되었다.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를 자극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3. ‘다빈치코드’의 문제점

 

(1) 시온수도회

‘다빈치 코드’의 주장: 프랑스 왕 고드프루아가 1099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직후 성배 (聖杯, Holy grail)의 비밀과 상릴(Shangreal) 문서를 지키고자 창설하였다. 1795년 파리 국립도서협회는 양피지 기밀문서를 발견하였다. 아이작 뉴턴, 빅토르 위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이 시온수도회 회원이었다.

사실: 시온수도회는 1956년 프랑스사람 피에르 플랑타르드가 창설하였다. 플랑타르드는 위조 전문 범죄자였고 반 유대주의자였다. 플랑타르드는 가짜문서를 만든 후 몰래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넣어 두었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조작하였다. 플랑타르드의 사기사건에 가담했던 공범들이 이러한 사실을 자백하였고 영국 BBC방송에서 사기극의 전모를 보도하였다.

 

(2) 탬플(Temple) 기사단

‘다빈치 코드’의 주장: 시온수도회가 만든 군사조직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배의 비밀이 기록된 상릴문서를 발견하였고, 이 문서를 이용하여 바티칸을 협박해서 엄청난 돈과 권력을 얻게 되었다. 교황 클레멘트 5세가 프랑스 왕 필립 4세의 군대를 이용하여 탬플기사단을 제거하고 화형시켰으나 성배의 비밀문서는 받아내지 못했다.

사실: 탬플 기사단은 1118년에 휴 드 페인이라는 사람에 의해 창설되었다. 기사단의 임무는 성지 순례를 가는 기독교인들을 보호하고 안내하는 일이었다. 기사단은 성지순례자들의 헌금과 이를 이용한 은행업으로 큰돈을 벌게 되었다. 어떤 문서를 발견한 기록은 전혀 없다. 1291년 아크레에 있던 십자군의 마지막 요새가 이슬람 군인들에게 함락되자 탬플기사단은 유럽으로 철수했다. 프랑스의 필립 왕은 탬플기사단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교황에게 압력을 가하였고, 군대를 보내 탬플기사단을 기습하고 제거하였다. (교황은 오히려 탬플기사단과 관계를 좋게 하려고 노력했다.)

 

(3) 오푸스 데이 (Opus Dei)

‘다빈치 코드’의 주장: 바티칸의 고위 성직자 집단으로서, 극단적 고행으로 충성을 다짐하는 가톨릭 집단이다.

사실: 1928년 스페인에서 창설됨. 대부분의 회원은 평범한 가정을 둔 일반인들이다. 3% 미만만 성직자들이다. 극단적 고행활동이나 충성 행동은 없다.

 

(4) 성경 형성과정

‘다빈치 코드’의 주장: 성경은 하늘에서 내려온 게 아니고 인간이 만들어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번역과 추가, 개정을 통해 발전되어 온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오늘날의 성경을 만들었다.

사실: 성경은 40명 이상의 저자들에 의해 1500년 이상에 걸쳐 기록되었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역사이고, 어떤 부분은 개인서신, 회고, 비평, 전기, 자서전, 법률, 예언 등이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고 콘스탄티누스나 바티칸이나 초대 기독교인들과 아무 관계없이, 예수님 탄생하시기 수백 년 전인 기원전 4세기경 이미 완성되어 합본으로 만들어져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성경인 70인역 성경이 대표적이다. 기원전 250년-150년 사이에 번역됨. 히브리어 원본에서 추가, 개정된 것이 아니고 단지 번역된 것이다.)

윌리엄 올브라이트: “신약성경의 그 어떤 책도 AD80년 보다 더 늦은 시기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A.T. 로빈슨: “신약성경 전부가 AD70년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확실하다.”

신약성경은 예수님 생존 때부터 불과 40-50년 이내에 기록된 생생한 역사기록이다.

콘스탄티누스보다 150여 년 전의 기독교 지도자인 이레니우스의 책 ‘이단 반박’에 이미 4복음서만이 분명한 복음서이며 공식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F.F. 브루스: “AD180년경에 복음서가 4개라는 생각은 기독교계 전체에 너무도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사실로 확립되어있었다.”

즉,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보다 수백 년 전에 신약성경은 정경으로 인정되고 사용되었던 것이다.

 

정경(Canon) 결정 기준:

1. 사도의 권위성: 바울, 베드로, 요한, 마태, 누가, 마가, 야고보, 바나바

2. 교리의 일치성, 구약 예언의 성취성

3. 교회와 교부(church father)들의 공감성:

    폴리캅(사도 요한의 제자, AD115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AD150년),

    이레니우스(폴리캅의 제자, AD2세기 초)

 

(5) 니케아 종교회의

‘다빈치 코드’의 주장: 복음서는 80여개나 되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D325년에 니케아 종교회의를 열어 참가자들을 협박하여 현재의 4복음서만 채택하고 다른 복음서를 폐기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투표에 붙인 결과 간발의 차이로 4복음서가 겨우 통과되었다.

사실: 니케아 종교회의에서는 어느 성경을 정경으로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니케아 종교회의의 내용은 성자(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성부(여호와 하나님)와 동등한가, 성부보다 약간 낮은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아타나시우스가 제안한 성부와 성자는 신성이 동일하다는 ‘삼위일체설’을 정설로 채택하였다. 투표에 붙인 결과 압도적인 찬성으로 (300:2) 통과되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

‘다빈치 코드’의 주장: 예수는 위대한 인간이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예수 자신은 자기를 신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니케아 종교회의를 열어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성경은 모두 폐기시키고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 성경만 인위적으로 채택하여 예수를 신격화, 우상화 시켰다.

사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인 동시에 완전한 신이었다. 예수님 자신도 자기가 신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많은 기적과 부활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제자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분명히 믿었다.

  4복음서는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채택된 게 아니며 콘스탄티누스 시대보다 수백 년 전부터 복음서는 오직 4복음서임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4복음서는 예수님의 신성만 강조한 성경이 아니고 예수의 인성(배고픔, 피곤함, 슬픔, 화냄, 놀람, 유혹 받음)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책은 4복음서 보다 오히려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더 강하다.

예를 들면,

(도마복음서 1장2-9절)

예수가 5살 때 다른 히브리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예수는 강둑에서 진흙을 한줌 떠내어 진흙으로 참새 열두 마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어떤 유대인들이 예수의 아버지 요셉에게 가서 예수가 안식일에 진흙으로 참새를 만든다고 안식일을 모독하는 짓이라고 했다.

그러자 요셉이 예수에게 가서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느냐?”고 말했다.

예수는 자신의 손바닥을 치더니 그 참새들을 불러 말하기를 “가거라. 멀리 날아가거라.”하고 말했다.

그러자 참새들이 시끄럽게 떠들면서 멀리 날아갔다.

사실: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성경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황당한 잠언집 같은 내용의 나열이며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 되는 수수께끼 같은 것이 대부분이다.

 

(도마복음서)

예수가 말했다.

“사자를 먹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이는 사자가 사람이 됨이라.

사자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으리니 이는 사람이 사자가 됨이니라.

너희가 남자와 여자를 하나로 만들어서 남자는 더 이상 남자가 아니고 여자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닐 때, 그때 너희는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세상을 알게 된 사람은 누구나 시체를 발견한 것이요, 시체를 발견한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보다 귀중한 사람이다.“

 

(빌립복음서)

겨울은 세계이며, 여름은 다른 세계이다.

겨울에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다.

 

(7) 영지주의(Gnosticism) 복음서

 ‘다빈치 코드’의 주장: 복음서는 4복음서 이외에도 진리복음서, 도마복음서, 빌립복음서, 이집트인들의 복음서, 마리아복음서, 유다복음서 등 80여개나 되는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AD325년에 니케아 종교회의를 열어 참가자들을 협박하여 현재의 4복음서만 채택하고 다른 복음서를 폐기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 성경은 모두 폐기시키고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 성경만 인위적으로 채택하여 예수를 신격화, 우상화 시켰다.

사실: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란 지식(Gnosis), 즉 영에 관한 지식을 숭상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지냄과 부활로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믿었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깨달음을 통한 ‘득도의 지식’, 즉 그노시스(gnosis)를 얻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중재나 교회의 간섭 없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속죄의 죽음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신적 자아를 발견한 한 가지 경우라고 믿었다. 예수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죽었다고 믿는 영지주의자들조차도 그것이 속죄의 죽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적 가능성을 깨우쳐주는 수단이었다고 믿는다.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예수는 로고스(이성, 특별한 지식)로서 우리에게 ‘그노시스’를 가져다주기 위해 죽음을 초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은 모두다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다. 예수의 부활을 믿는 것은 바보들의 신앙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단지 상징적으로 해석했으며 은유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영지주의는 기독교가 대중화되자 기독교를 이용하고 역사를 왜곡하여 플라톤적 사상을 전파하려는 이단들이었다. 영지주의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에 기초하지 않은 관념적 사상체계에 불과하며,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많은 문제를 일으킨 이단이다. 영지주의 문서들은 사변적 사상들로 꽉 차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인간적 사색만으로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사상이다.

  영지주의는 예수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한다. 영지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사상’이지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다.

영지주의 복음서라는 것도 80여개가 아니고 6개 (진리복음서, 도마복음서, 빌립복음서, 이집트인들의 복음서, 마리아복음서, 유다복음서) 밖에 없다.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2세기-6세기 때 기록된 이단문서들이다.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너무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기록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신약성경의 4복음서들은 AD60년-95년 이전에 십자가 사건의 생생한 목격자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영지주의 복음서의 제목은 도마, 빌립, 맛디아, 유다, 마리아 등의 예수님의 제자들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제자들과는 전혀 관계없이 기록된 것이며 이름만 갖다 붙인 것이다.

오리겐 (2세기 초반 기독교 지도자): “나는 도마복음서, 맛디아 복음서를 비롯한 여러 복음서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 가운데 우리는 오직 교회가 인정한 것만 인정해 왔으며, 교회는 오직 4복음서만 받아들여야 한다.”

도마 복음서, 빌립 복음서, 마리아 복음서 같은 영지주의적 문서들은 이미 2세기 초대기독교인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 문서들은 거짓 문서이며 이단문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교인들에게 이단문서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했던 것이다.

 

(8)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와의 결혼설

‘다빈치 코드’의 주장: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였으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당시 마리아는 예수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성배는 술잔이 아니고 예수의 피를 잉태한 막달라 마리아가 성배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후 아리마데 요셉과 함께 이집트로 피난 가서 이집트에서 예수의 딸 ‘사라’를 낳았으며, 그 후 이들은 배를 타고 프랑스 남부지방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하였다. 예수의 후손은 프랑스 메로빙 왕조를 이루었으며, 그 후손들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이삭 뉴턴, 빅토르 위고 등이 있다.

사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전혀 없다. 예수는 그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았다.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 듯이 오해되고 있는 영지주의 복음서에서조차도 예수가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빌립복음서 (3세기에 편집된 영지주의 문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동행자는 막달라 마리아였다. 그리스도는 다른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욱 사랑했고 자주 그녀에게 키스했다. 다른 제자들은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했고 반대를 표명했다. ‘어째서 저 여자를 우리들 보다 더 사랑하시나이까?’하고 그들은 예수께 말했다.

사실: ‘동행자’라는 단어는 아람어로 기록된 게 아니고 콥트어(고대 이집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 뜻은 ‘동역자, 동료, 친구’라는 뜻이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이 마리아와 결혼했다면, 왜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신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겠는가?

 

(9)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

‘다빈치 코드’의 주장: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며, 그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예수의 아내 막달라 마리아를 그려놓았는데,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사도 요한이라고 알려진 사람이 바로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림에 성배(聖杯, Holy grail)가 없는데, 그 이유는 막달라 마리아가 바로 예수의 혈통을 자궁에 잉태한 성배이기 때문이다. 예수와 마리아 사이의 V자 형태는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도록 다빈치가 암호화 한 것이다.

사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의 후손이 아니고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30km 떨어진 마을 빈치(Vinci)에서 1452년 4월 15일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래서 성(性)을 다 빈치 (Da Vinci)라고 붙였다.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그라치에’에 위치한 도미니카 수도원 식당 벽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1495년부터 4년간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와 12제자들의 최후의 만찬 장면을 벽화로 그렸다. 이 수도원은 1943년 이차 대전 중에 폭격을 당해 크게 부서졌으며, 현재 ‘최후의 만찬’ 그림은 밀라노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벽에 그리기 전에 레오나르도는 종이에 습작 스케치를 그렸으며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고 사도 요한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사도 요한이 수염도 없고 여성적 모습의 아름다운 얼굴로 그려진 것은 레오나르도 뿐 아니라 그 당시 모든 화가들의 그림에 모두가 사도 요한을 그렇게 여성적으로 나타내는 게 관례였다.

  레오나르도의 그림 ‘최후의 만찬’은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 ‘제자중의 한사람이 배반하여 나를 팔리라’는 말씀을 하신 직후, 제자들의 놀라고 긴장되고 슬퍼하는 순간의 모습들을 그린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 요한 사이의 V자 형태는 그림의 원근감을 강조하기 위해 레오나르도가 채택한 새로운 화법이다.

 

(10) 기독교와 여성의 권리

‘다빈치 코드’의 주장: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을 뿐 아니라 교회의 최고 권한을 막달라 마리아에게 물려주었다. 그러나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남자 제자들이 창세기의 원죄가 여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등의 음모를 꾸며 마리아로부터 권력을 탈취하였다. 그 후 교황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창녀로 비하시키고 교회로부터 여성의 권위를 박탈했다.

사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 적이 없고, 마리아에게 권세를 물려준 적도 없으며, 베드로와 12사도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독교 지도자들은 권력자가 아니라, 사랑과 겸손으로 교회를 섬겼으며, 마침내 로마제국에 의해 비참하게 순교할 때까지도 성도들을 위해 헌신했다.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사도들의 활동에 동참했다.

  성경은 많은 여성들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드보라의 리더십, 룻의 충성, 아비가일의 외교력, 에스더의 애국심, 뵈뵈의 봉사정신, 아굴라의 아내 브리스길라 이야기, 바울의 동역자 유니아 이야기 등이다.

  신약성경은 그 어느 종교나 철학에서보다도 더욱 여성의 권리와 인격을 존중하고 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베드로 전서 3장 7절: “남편들아...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respect her = 존경하라)."

 

성경은 그 시대에는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주장인,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거룩한 존재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원죄에 대한 책임을 하와에게 돌리고 있지 않다.

로마서 5장 12절: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영지주의 문서들 중에는 여성의 인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

 

(도마복음서)

베드로가 예수에게 말했다. “마리아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십시오. 여자들은 생명의 가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예수가 말했다. “보아라. 그녀 역시 너희 남자들처럼 생령이 되게 하기 위해 내가 그녀를 데려가 그녀를 남자로 만들리라. 스스로 남자가 되는 여자마다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니라.”

사실: 영지주의 복음서 자체에도 예수가 마리아에게 교회를 시작하라고 지시를 내렸거나 마리아가 그런 지시를 받았다는 언급은 전혀 없다. 마리아복음서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다만 베드로가 궁금해 하는 것은, 예수께서 다른 모든 제자들을 제외해 놓고 마리아만 그리스도에게서 어떤 특별 계시를 받은 건 아닌가 하는걸 알고 싶어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 이유는 영지주의 복음서의 핵심은 바로 ‘특별계시’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복음서: 5세기)

그리고 베드로가 말했다. “우리 몰래 주님이 정말로 그 여자와 말씀하셨다는 거야? 우리가 모두 돌아가서 그녀에게 복종하라는 거란 말이야? 주님은 우리보다 그녀를 더 우선했다는 거야?” 그러자 레위가 대답했다. “베드로 자넨 언제나 성질이 급하군. 이제 보니 자넨 여성을 마치 원수같이 여기는군. 주님이 그녀를 높이셨다면 자네가 뭔데 그녀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주님은 분명히 그녀를 잘 알고 계실 걸세. 그게 바로 그분이 우리 모두보다 그녀를 더 사랑한 이유지.”

 

(11) 여호와의 이름

‘다빈치 코드’의 주장: 하나님의 이름 ‘야훼’는 ‘여호와’에서 파생되었는데, ‘여호와’의 원래 뜻은 남자 신을 뜻하는 ‘야(Yah)'와 여자 신을 뜻하는 '하와(Hawah)'가 육체적으로 결합된 양성적 하나님 (남성이기도 하고 여성이기도한 하나님), 완전한 하나님인 ’여호와‘라는 뜻이다. 즉 남자 신과 여자 신이 성적으로 결합해 있는 상태가 ‘여호와’인 것이다. 하나님은 성교(性交)의식으로 비로소 완전한 하나님이 된다.

사실: ‘여호와’에서 ‘야훼’가 파생된 것이 아니고, ‘야훼’에서 ‘여호와’가 나오게 되었다. 원래 하나님의 이름 야훼(YHWH)는 고대 히브리어로서 자음으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그 후 유대 서기관들이 주(Lord)를 뜻하는 아도나이(Adonai)에서 모음을 차용하여 4개의 자음 사이에 끼워 넣어서 발음하기 쉽도록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YaHoWaH)이다.

  그 단어가 1270년경에 라틴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Jahovah로 표기되어 오늘날의 여호와라는 용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4. 결론: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코드’는 전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 소설은 영지주의, 종교다원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입각한 공상소설이며, 철저히 반기독교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줄거리가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시대정신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상,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같은 것을 믿지 않고도 기독교를 믿을 수 있다는 사상,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교리를 편집해 믿을 수 있다는 점, 섹스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는 내용 등이 현대인들을 강력하게 유혹한 것이다.

‘다빈치코드’ 안에는 구원도 영생도 없다.

 

참고문헌:

 

리 스트로벨 지음, 윤관희, 박중렬 옮김: 예수는 역사다. 두란노. 2000.

어윈 루처 지음, 이용복 옮김: 다빈치코드 깨기. 규장. 2006.

조쉬 멕도웰 지음, 오진탁 옮김: 다빈치코드 그 해답을 찾아서. 순출판사. 2006.

조쉬 맥도웰 지음, 오진탁 외 2인 옮김: 기독교변증 총서 1. 순출판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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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성령님이 인도하신 2009년 나의 삶 2 다대봉 2010.01.16 1975
156 이런 교회라서 우리 교회가 좋습니다(1) honey 2009.06.15 1958
155 아버지 경보 2009.06.15 1944
154 하나님의 관점(추천도서를 읽고) honey 2006.04.06 1944
153 대구 동신교회 마커스 초청 집회 4 file 엣지 2012.01.13 1942
152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3) honey 2009.04.18 1942
151 내 그럴 줄 알았어! 1 honey 2006.06.23 1942
150 중국대학선교회(CUM) 2011 중국선교컨퍼런스 1 중국대학선교회 2011.04.19 1929
149 cbs 대구방송 남성합창단의 정기연주회 cbs남성합창단 2006.11.03 1916
148 그랜드 캐년을 제대로 구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honey 2006.02.2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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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기독교 사회선교 아카데미 file 성서대구 2011.01.03 1892
145 Again 1907 in Daegu 함께 동참해요.^^ 이런이런 2006.05.26 1889
144 사랑스런 아기들이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방사회복지 2010.04.30 1888
143 양질의 목양자료 많이 있어요 굳뉴스 2006.09.22 1886
142 2006 총신신대원 입시 특강 안내 - 성음성경연구원 하편 2006.08.10 1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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